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3D프린팅 기술이 과거 내연기관과 컴퓨터 다음으로 제조방식의 혁신을 통해 3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술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기존 CAD/CAM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3차원 실감형 의료 영상 기술과 연계, 내·외부 구조가 복잡한 3차원 인체 부위를 실사에 가깝게 프린팅 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3D프린팅은 바이오 메디컬 분야의 핵심 제조기술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2000년을 전후해 고정밀 3D프린터가 상용화되고 생체 친화성 또는 생분해성 고분자를 이용한 프린팅이 가능해짐에 따라서 3D프린팅의 의·공학 분야의 활용이 본격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인체 내에 넣을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환자의 신체 일부나 장기를 만들어 내는 ‘바이오 프린팅’ 시대가 열리고 있다.
외국의 경우 3D프린팅 기술의 의료분야 적용이 매우 활발하며 임상적용에 성공, 생명을 살리거나 심부 장기를 직접 프린팅해 환자에게 이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네덜란드 유트레히트대학 의료센터는 3D프린터를 이용해 만든 두개골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만성 골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 환자의 두개골 윗부분을 잘라내고 3D프린터로 만든 두개골을 이식한 것이다.
이 수술을 통해 환자는 시력을 완전히 회복하고 문제가 됐던 증상도 없어져 성공적으로 직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보다 더 먼저 두개골의 70%를 인공 두개골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수술했다는 보고도 나왔다.
생체조직과 기능적인 전기부품을 이용해 원래의 장기보다 더 나은 기능을 발휘한 생체공학 귀 사례도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연구원들은 배양연골(하이드로겔)을 인간 세포와 함께 심어 사람의 귀 모양으로 만들고, 은 나노 입자 합금으로 만든 유도 코일을 내장해 달팽이관 모양의 전극으로부터 신호를 처리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왼쪽과 오른쪽 귀가 한 쌍으로 동작해 스테레오 음악까지 들을 수 있는 기능적인 장기를 만들어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은 모낭과 땀샘을 가진 이식 피부를 프린트할 수 있는 3D프린터를 만들어냈다. 그동안 화상환자를 비롯한 피부 결손환자의 치료법으로 건강한 쪽의 피부를 떼어 손상당한 피부에 이식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지만 이식 실패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화상부위 이외의 부위까지 고통과 부담을 강요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3D피부 프린터를 이용하면 환자 자신의 세포를 기초로 한 피부로, 거부반응이 없고 상처도 최소화 할 수 있다. 이 제품은 영국의 제임스다이슨재단이 주최하는 국제 학생 디자인상인 제임스다이슨상을 수상했다.
3D프린팅의 활용으로 사람의 생명을 구한 사례도 있다. 태어난 후 기도가 막혀 호흡장치에만 의존한 채 살아왔던 18개월 아이의 기도를 CT 스캔과 CAD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기도 3D모델을 만들고 기관지에 맞는 맞춤 부목을 설계한 것. 이 아이에게 이식한 부목은 3년 동안 유지된 후 생체에 흡수됐고 이후 기도는 거의 온전한 기능을 회복했다.
다양한 의료분야에 3D프린팅이 활용되는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의 의료분야 활용은 아직 시작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지속적으로 괄목할만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가장 3D프린트의 활용이 활발한 분야는 치과의 ‘크라운’과 ‘브릿지’ 등이다. 기존의 치아 보철물들은 주조방식으로 고온, 고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기공사의 숙련도에 따라 모양이나 질이 달라지기 쉬웠다. 하지만 3D프린터를 이용, 더욱 정교하게 생산할 수 있어 환자의 만족도를 크게 높이고 있다.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수술 계획을 수립, 수술의 성공률을 높인 사례도 있다. 대동맥 박리 수술은 순간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하는 매우 복잡한 수술이다. 서울성모병원 흉부외과 송현내·강준규 교수팀은 3D프린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 수술을 성공리에 마쳤다. 먼저 3D프린터로 환자 대동맥 모형을 만들고 미리 제작한 정확한 길이의 스텐트를 이용해 시뮬레이션, 수술의 성공률을 높인 것이다.
또한 오왕균 교수팀은 대퇴골 골절 수술 전에 3D프린터를 이용하여 환자 맞춤형 대퇴골을 제작했다. 골수강으로 골수내 정 삽입술을 시행해 수술시간을 단축시키고 2차 골절 등의 합병증을 줄일 수 있었다.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백정환 교수팀은 부비동암 수술에 3D프린팅 기술을 적용했다. 미리 프린팅한 골격모형을 이용해 가상 수술 시뮬레이션을 시행, 수술 계획을 사전에 논의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안면부 함몰과 비대칭 부작용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인간의 몸 속과 장기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때문에 동일한 수술기기라도 누구에게나 똑같은 효용을 낼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3D프린터를 활용하면 개별 환자에 맞는 맞춤형 수술 기구를 만들 수 있다. 순천향대병원 소화기내과 조주영 교수는 내시경 기구를 3D프린터를 이용해 직접 제작, 소화기점막내 종양을 성공리에 제거했다.
환자의 신체 일부를 직접 프린트 해 이식하는 사례도 지속적으로 보고 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성형외과 이종원 교수팀은 코 없이 태어난 6세 몽골 소년 ‘네르구이’에게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하여 맞춤형 기도 지지체를 제작했다. 이 교수팀은 이를 원래의 기도에 이식해 코로 숨을 쉴 수 있게 했다
또한 세브란스병원 심규원 교수는 3D프린터를 이용해 4명의 환자에게 성공적인 두개골 재건술을 시행했다. 기존의 골 시멘트를 이용한 두 개 성형수술은 굳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골 결손이 큰 경우 정확한 형태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또 결손부위에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수술후 균 감염 빈도도 높았다. 하지만 3D프린터를 통해 거부반응이 거의 없는 티타늄 소재이면서 정밀도가 높은 보형물을 만들어 냄에 따라 인공 두개골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수술시간도 줄일 수 있었다. 기능뿐만 아니라 미용 면에서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것이다.
3D프린팅 기술은 의료 교육 분야에도 활용이 늘고 있는 추세다. 뇌나 심장처럼 위험도가 높은 데 비해 환자를 자주 접하기 어려운 경우, 평소에 수술법이나 위험사항 등을 잘 숙지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중앙대병원은 3D프린터로 제작한 두상 모형으로 복잡한 뇌종양 수술 실습 교육을 실시했다. 대학은 추후 3D프린터를 이용한 인체 모형을 제작해 해부학 교육에도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학습용 시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의대생과 전공의의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 프린팅 기술은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의료계가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국가 전략사업으로 지원이 늘어남에 따라 앞으로 좋은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가 완성도 높은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실현하려면 세 가지 기술의 통합이 필요하다. 하나는임상적으로 필요한 기능을 하는 세포를 적절하게 위치시키는 세포공학이고 또 하나는 3D프린터 안에서 세포와 바이오 재료를 결합시키는 생체제조 공학(biomaunfacturing technology)이다. 이와 함께 생체제조품(biomanufacture)이 생체 내에서 안정성과 효율성 내고 이식 후에도 기능을 하는지 관찰하는 생체내 통합 공학(technology for in vivo integration) 기술도 필요하다.
이 같은 조직 기술의 발전과 함께 장기 프린팅이 현실화되려면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장기 프린팅의 가장 중요한 난제는 혈관 네트워크의 연결이다. 혈관 연결이 안되면 두꺼운 3D 조직과 장기는 충분한 영양과 가스교환을 할 수 없고, 노폐물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세포의 생존 능력을 낮추고, 인공장기의 기능부전을 야기할 수 있다. 충분한 혈관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세포로 영양분과 성장인자, 산소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하며 젖산과 이산화탄소, 수소이온을 제거할 수 있어야 세포가 성장 및 융합을 지속하여 장기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만든 장기가 자연 장기처럼 작용하려면 혈관 구조를 가진 3D 장기는 간세포성 구조(heterocellular aggregates)를 이용해 제작해야 한다. 간세포성 구조를 달성했을 때 정확하고 선택적으로 세포들을 위치시킬 수 있어 바이오 프린팅 프로세스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당면한 과제는 난립하고 있는 3D프린터들의 데이터 포맷을 표준화하는 일이다. 3D프린터의 포맷이 표준화되면 특별한 전환 작업이 없이 어느 3D프린터에서나 같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고 이는 바이오 프린팅이 상용화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조선대학교 역시 3D프린팅의 성장 엔진을 유지하기 위해 ‘3D프린팅을 위한 데이터 포맷 표준화’와 ‘“3D프린팅 소재의 표준화를 통한 의료용 3D프린팅 개발 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안전성과 비용 문제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특히 인공장기를 인체에 삽입하는 경우 재료에 대한 인체 거부 반응 등을 고려해야 한다. 재료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와 포맷의 표준화를 통해 3D 바이오 프린팅의 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