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에

송민령 2016. 04. 08

[1] 알파고 충격과 이세돌의 선물


00robot3.jpg» 출처 / https://youtu.be/7Pq-S557XQU


“나, 그냥 캄보디아 오지 같은 데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까?”


연이어 승리하는 알파고를 보며 친구에게 했던 말이다. 불안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기술 문명이 들어오는 속도가 더딜 오지로 도망가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학교에 강연을 하러 왔던 구글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궁극적으로는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는 과학자, 또는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인공지능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난 뭐 해먹고 살라고!


미래의 어느 순간을 상상할 필요조차도 없다.[1] 미국은 자동화로 제조업 일자리의 11퍼센트를 잃었고, 중국조차 공장 노동자 1600만 명을 해고했지만 로봇 덕분에 생산성이 오히려 증가했다. 무인 운송 시스템이 도입되는 물류 산업, 자동 판매기가 늘어나고 있는 소매업,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침투하고 있는 각종 사무직 분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반면, 로봇 판매량은 2011년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43퍼센트 증가했다.[1] 법률문서를 분석해 주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인 이디스커버리(eDiscovery)는 변호사 500명 분의 일을 더 정확하게 할 수 있으며, 이미 신문 기사가 인공지능에 의해 작성되고 있다. 의료 수술이 로봇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이비엠(IBM)의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은 곧 의료 진단의 영역까지 침투할 예정이다.




낯설고 난감한 대상, 인공지능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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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괴롭힌 것은 밥그릇 걱정만이 아니었다. 일상의 곳곳에서 마주칠 인공지능 로봇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우리는 사람과 동물의 행동에 대한 경험적, 진화적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고, 이에 기반하여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고 대응한다. 따라서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공격해 올 때는 표정과 행동 패턴을 통해 대비할 수 있다.


컨대, 복잡한 도로에서 차선을 바꾸거나 신호등이 없는 삼거리를 지날 때, 우리는 다른 차가 양보를 해줄지 말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성질 급하게 밀고 들어가다가 사고를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찰나의 눈치로 안전하게 지나간다. 또 어떤 사람이 만취한듯이 비틀거리거나 모자를 눌러쓰고 눈치를 보며 접근할 때, 우리는 어느 정도 머리를 굴릴 수 있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나 로봇에 대해서는? 자율운전을 하는 자동차가 실수를 한다면 그건 어떤 종류의 실수일까? 얼마 전 구글에서 나온 자율주행차가 모래주머니를 피해 크게 우회전 하다가, 시속 24km 정도로 이동 중이던 버스와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다.[4] 구글은 최초로 사고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모래주머니를 피해 여러 사람이 타고 있는 버스를 들이받는 이 ‘인간적’이지 못한 실수는, ‘자율주행차가 다수의 안전과 운전자의 안전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와 같은 윤리적 논란을 일으켰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일부 도로에서의 자율운행이 허가되었고,[5] 머잖아 구글, 현대, 도요타 등 여러 회사에서 나온 온갖 종류의 자율주행차들이 도로에 쏟아져 나올 것이다.[6] 그럼에도 자율주행자와 운전자, 보행자의 상호작용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 부족하다. 치열한 눈치 싸움이 오가는 도로에서 내 차가 무리해서 지나려 할 때, 자율주행차는 사람처럼 눈치채 줄까? 자율주행차의 움직임을 내가 눈치챌 수는 있을까? 위 사고에서 구글의 자율주행차와 버스 운전기사는 대단히 느린 속도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를 둘 다 하지 못했다.


떤 전자 장비도 예외일 수 없으며,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해킹은 또 어떤가? 철벽 보안이어야 할 은행도 뚫리는 마당에, 해킹이나 악성 소프트웨어로 인한 오작동, 납치가 문제시 되지는 않을까? 그럴 때 차 안팎의 사람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동일한 문제들이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로봇에도 적용된다. 얼마 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나온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 [7] 아래 동영상)는 사람처럼 걷고, 문을 여닫고, 물건을 나를 수 있다. 이 로봇들이 강아지처럼 사람과 함께 산책하며, 사무실이나 거리를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어쩐지 무서워졌다. 하물며 이들에게는 “죽음”이 없다. 모든 인간과 생명체에게 강력하게 작동하는 “죽음”이 이들에게는 무의미하다. 나는 1초 뒤에 이 로봇이 어떻게 움직일지 표정을 보고 예측할 수도 없고([8] 동영상), 로봇을 죽일 수도 없다. 오로지 나의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아니, 죽음조차 재정의 될지도 모르겠다. 인공의수(프로스테틱스; prosthetics, [9] 동영상),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유전공학, 인공지능, 로봇공학의 발전은 생명과 기계의 경계를 점점 더 흐리게 만들고 있다. 종국에는 기계가 인간 종을 대체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까지 나오는 판이다. 일부에서는 뇌를 다른 몸에 이식하려는 시도도 일어나고 있다.[10]. 나는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인가?



과거로 돌아갈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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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떨던 내가 고개를 들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질문과 한 사람의 그릇 덕분이었다. 알파고에 대해 논의하는 한 세미나에서 연사님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기술이 지금보다 못했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글쎄…. 예전엔 어땠더라? 초등학교 때 배운 것처럼 시속 300km로 달리는 케이티엑스(KTX)와 핸드폰이 여가 시간을 늘려준 것인지는 도통 모르겠다. 퇴근 후와 주말에도 회사에서 카톡과 이메일이 날아온다는 하소연과 잦은 출장 얘기는 들어봤다만…. 익숙해진 지금이야 컴퓨터와 핸드폰 없이 어찌 살았나 싶지만, 모두에게 없던 시절에는 없던 대로 별 문제 없었다.  통일호 타고 다녀도, 편지를 며칠씩 기다려도, 제법 괜찮은 삶이었다.


그런데 과학과 기술이 바꾼 게 그뿐이던가? 또 뭐가 있지? 생각하다가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지금보다 더 인종을 차별하고, 남녀를 차별하고, 대다수 일반인에게는 선거권조차 없던 시절로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뉴스를 종이 신문으로 보느냐 아이패드로 보느냐는 어찌보면 사소한 문제다. 진짜 중요한 것은 과학과 기술을 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난 변화였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세계관과 인권의식, 사회제도의 변화와 항상 함께 일어났다.


00JL.jpg» 저서 <통치론>에서 자유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 입각한 의회 민주주의를 제안했던 정치사상가 존 로크는 자신을 “뉴턴의 하수인”이라고 불렀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17세기 유럽의 과학혁명은 유럽인들이 세상을 보는 방법을 크게 변화시켰다.[2] 뉴턴 물리에 따르면, 불확실한 것은 없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까지 예측할 수 있었다. 뉴턴 물리 덕분에 유럽인들은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무지를 극복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계몽 운동이 일어나고 절대왕정에 도전하는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입헌군주제가 영국에서 가장 먼저 채택된 것도 뉴턴 과학을 통하여 낡은 중세구조를 비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과학과 기술에 의한 사회 변혁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은 가사노동의 부담을 줄여 여성의 사회진출을 도와주었다.  여성들이 돈을 벌게 되면서 서양에서도 남녀차별이 점차 약화되어 갔다.[11](동영상). 온라인 공개수업(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을 비롯한 방대한 온라인 자료들은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정보의 독점을 완화하고 있다.[1] 공중파 방송과 라디오가 소수의 목소리만을 전달할 수 있는 반면, 아프리카 티비, 팟캐스트, 블로그, 트위터 등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방송할 수 있게 해준다.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도 세계 각지에서 실험되고 있다.[12] 이러니 내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겠는가!



‘이세돌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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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도 남아 있던 불안감은 “인간이 아닌 이세돌이 진 것이다”라는 이세돌의 한마디에 쓸려나갔다. 대단히 겸손한 모습인 동시에, 인간이 기계에 졌다며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하는 말로 들렸다. 사실, 경기를 보던 이들 중 그 누구도 이세돌만큼 타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생을 걸었던 바둑에서 스스로 시인할 만큼의 압박을 받고 있었고, 연이은 패배에 엄청난 혼란과 환호와 두려움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배려해 준 사람됨을 보니 고마움과 함께 여유가 생겼다.


00lsd_alphago2.jpg» 이세돌 9단이 3월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을 마친 뒤 밝은 표정으로 소감을 말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김명진 기자


공지능을 둘러싼 혼란과 불안들이 오히려 반가워졌다. 과학과 기술의 의의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이토록 집중된 적이 있었던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대단히 시의적절하게도, ‘우리에게 과학이 무엇이고, 이걸로 뭘 할 것인가’를 성찰해볼 기회를 맞이한 건 아닐까? 한국에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경기를 치르지 않았더라면 오지 않았을 소중한 기회.


00robot4.jpg» 요즘은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온도계. 0점을 어디로 정하고 1도를 얼마로 정할 것인가와 같은 기본적인 것조차 오랜 논의와 혼란을 거쳐서 만들어졌다.[8]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Temperature서구인들이 오늘과 같은 모습의 과학을 만들기까지는 무려 수백 년이 걸렸다.[13][14][15]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측정하는 과학 연구의 방법론이 오랜 시간, 여러 사람에 걸쳐서 다듬어졌고, 수학과 통계를 활용하는 방식(및 수학과 통계 그 자체)[16], 학분 분야의 구축, 협력연구 요령 등도 수백여 년 간 온갖 사건을 겪으며 만들어냈다. 우리나라 대학의 이공계열 학과들은 이런 수백여 년의 시간을 걸쳐서 분지하고 생겨난 것들이다.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갈릴레오,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등이 일으키는 센세이션을 이세돌-알파고의 격돌만큼 가까이서 보며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감각을 다질 수백 년의 시간이 있었다. 서구인들은 과학이 가져다 준 편의, 경제성장과 군사력 만큼이나 실험실 안전사고, 연구윤리, 사이비과학, 연구 성과의 성급한 남용, 과학 연구가 사회에 일으킨 크고작은 변화들을 절절하게 겪어왔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과학이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에 가깝다. 그것도 대포 쏘아대는 제국주의와 함께.[2] 사회진화론의 옷을 입고 군대와 함께 밀어닥친 과학 기술의 충격은 실로 엄청나서, 이웃 중국에서는 대약진운동, 문화혁명과 같은 무지막지한 실험을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충격을 소화해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사회진화론에 기반한 제국주의는 피식민지를 멸시하고 수탈하였는데, 일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의 상황 또한 서양 열강의 식민지들과 다르지 않았다. 분단에 전쟁까지 잇달았으니 상황은 더욱 어려웠다.


적 같은 속도로 따라잡아 서구와 비슷한 과학적 성과를 내는 수준에 이르긴 했지만, 우리에게 과학은 여전히 남의 학문이다. 황우석 사태, “세계 최초”, “원천 기술”에서 보여지듯, 과학이란 '이전처럼 호되게 당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잘 먹고 잘 살려면 꼭 필요한 부국강병과 경제성장의 절대적 수단'이라는 막연한 인식이 흩어져있을 뿐이다.[17] 요컨대 서구 국가들과 우리나라는,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공의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없이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를 넘어 선도자 (first mover)가 되기 어렵다. 선도자는 남이 만들지 않은 기준을 스스로 확립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융합 연구가 중요할 때는 어려움이 따른다. 학문의 분류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분류 방식 자체가 대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린네가 시작한 생물 분류법은 생명에 대한 이해가 진전됨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고, 학자들의 관점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스스로 일궈낸 과학 분류다 보니 비교적 자유롭게 넘나드는듯 하다. 알파고를 만든 하사비스도 컴퓨터공학과 인지신경과학 등 몇개 분야를 넘나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서구인들이 분류해 놓은 결과만 따오다 보니 융합조차도 남이 이미 섞어놓은 것을 그대로 따오는 경향이 있다. 아직 우리 스타일로 분류하고 섞고 넘나드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인공지능, 통신, 생물학, 로봇공학 등 온갖 분야의 융합이 일어나는 지금, 자기만의 스타일로 섞고 넘나드는 능력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과학이 무엇이며 우리는 이것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논의는 과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과학의 안전한 사용에도 도움을 준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한 거짓말 탐지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것이 법정에서 악용될 여지에 대해 사회 각계에서 활발한 논의를 벌였다. 여러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학회와 학술지가 생기고 세미나가 열렸으며,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이 열리고 교육자료가 배포되었다. 그 결과, 얼마 전에는 뇌 영상기술이 두려워했던 만큼 악용되지는 않더라는 논문이 발표되었다.[18] 그러니 제대로 활용하기만 한다면,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을 보며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혼란은 대단히 유용하며, 또한 필요하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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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쓸 사이언스온 연재를 통해서 차근차근 보여주겠지만, 갈수록 생명과 기계의 경계는 흐려질 것이다. 뇌과학에서 영감을 얻은 심화학습(deep learning)뿐 아니라, 진화적 로봇공학(evolutionary robotics), 발달 로봇공학(developmental robotics)처럼 생명을 모방하는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이 생겨나고 있다. 역으로 유전공학을 사용하여 생명을 디자인하거나, 실험실에서 특정 장기를 만들어내듯이 생명을 기계처럼 디자인하고 생산해내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생명과 로봇을 연결하는 인공의수 기술 (prosthetics)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필연적으로 생명과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인적 자원”, “구조 조정”, “일중독”에서 비춰지듯이, 자본주의의 대두와 산업혁명 이후로 삶을 노동 생산성의 관점에서 대하는 경향은 강해졌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노동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게 되면 삶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색다른 고민이 시작될 것이다. 기후변화, 인터넷, 빈부격차에 힘입은 공유경제가 부상하고,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소유에 대한 관념,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인 노동에 대한 관념도 변화할 것이다.[1] 지난 시대에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탄생하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형태로 실현되었듯, 미래에도 새로운 개념들이 탄생하고 그에 따른 사회문화적 변화가 일어날 공산이 크다.


이런 변화들이 너무 거창해서 개인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사람의 영향은 작으면서도 작지 않아서, 남들 따라 묻어가는 것조차 이미 묻어가는 그 흐름에 힘을 보태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된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지구촌에서 힘을 보탤 남의 흐름들은 다양해졌고, 어느 흐름에 힘을 보탤까, 아니면 알리바바의 마윈처럼 내 흐름을 일으켜 볼까, 하는 것은 저마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달라질 터이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하는 가치 기준을 설정하는 일이야말로 인공지능이 결코 대신해줄 수 없는 영역이며,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많아질 미래를 대비하여 반드시 준비해야 할 영역이다.


학은 소수 대가의 권위에 순종하기보다는 “진짜 그래?” 하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나누는 집단적 노력을 통해 발전한다. 이런 특성은 전통적인 사회 조직들에 비해, 권위의 여부에 무관한 참여가 가능한 인터넷과 민주주의의 수평적 특성과 비슷하다. 이렇게 궁합이 맞아서인지 최근에는 과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고 과학 전문매체와 과학 행사도 많아졌다.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다양한 목소리가 분분하게 마련이고 정돈된 모습과도 거리가 멀어질 게다. 그렇지만 혹자는 불안해하고, 혹자는 흥분하는 논의의 과정이 좀 혼란스러워도 괜찮다. 2500여 년 전, 동서양 철학의 기틀을 세운 그리스와 중국의 제자백가들도 질서 정연하게 논의를 한 건 아니니까. 그러니 “제자(諸子: 여러 학자들) 백가(百家: 수많은 학파)”라 하질 않았겠나.


이왕에 선물을 받았으니 이걸 가지고 재미있게 잘 놀아볼까 한다. 다음 연재부터는 생명과 기계의 경계에 있는 기술들, 컴퓨터와는 다른 뇌의 특징들, 자유의지나 감정과 같은 인공지능과 뇌과학의 쟁점들을 다룰 계획이다.


[참고 자료]



[1] 제레미 리프킨, 한계 비용 제로 사회. 민음사 (2014).

[2] 정인경, 뉴턴의 무정한 사회, 돌베개 (2014).

[3] Human Need Not Apply https://www.youtube.com/watch?v=7Pq-S557XQU

[4] 구글 자율주행차 첫 사고...윤리문제 본격 제기된다. 중앙일보 (2016.3.1)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183914

[5] 주행자율 `제네시스 EQ900` 내달 첫 일반도로 달린다. (디지털타임스 2016.2.21)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6022202100151753001

[6] EQ900 구매 10명 중 8명 자율주행기술 패키지 선택. (연합뉴스 2016.3.14)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11/0200000000AKR20160311173000003.HTML

[7] Atlas, The Next Generation https://www.youtube.com/watch?v=rVlhMGQgDkY

[8] Fido vs Spot ? Animal vs Robot https://www.youtube.com/watch?v=S7nhygaGOmo

[9] Hugh Herr The new bionics that let us run, climb and dance (CUT)https://www.youtube.com/watch?v=Eue0jLtghCY

[10] ‘I’ll do the first human head transplant‘ The Guardian 2015.10.3https://www.theguardian.com/science/2015/oct/03/will-first-human-head-transplant-happen-in-2017

[11] 장하준 동영상_Thing 4 인터넷보다는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꿔놓았다!https://www.youtube.com/watch?v=pYb3U_1x724

[12] 듣도 보도 못한 정치 7화. 잠금해제, 엄지들의 힘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2053

[13]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까치글방 (2003).

[14] 장하석, 온도계의 철학, 동아시아 (2013).

[15] 장하석,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지식플러스 (2015).

[16] 데이비드 살스버그, 통계학의 피카소는 누구일까, 자유아카데미 (2011). 

[17] 연세 과학기술과 사회 연구 포럼, 멋진 신세계와 판도라의 상자; 현대 과학 기술 낯설게 보기, 문학과지성사 (2009). 

[18] AL Roskies et al. (2013) Neuroimages in court: less biasing than feared.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7: 99-101.




■ 연재를 시작하며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그거 알아서 뭐에 쓴다고 알라 하고 다닌 걸까? 아태이론물리센터의 2014년 선정도서,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를 저술한 장회익 교수님은 “우리가 생명이 무엇인지를 일단 이해한다면,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생명을 이해하고, 생명이 자리한 세상을 알아가면서 우리는 250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물음에 답할 준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뇌과학과 인공지능에 대한 이번 연재를 통해서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고, 우리가 이런 존재일 때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아울러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불안해 하는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이고, 이걸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따져볼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다. 막연한 대상은 두렵지만, 스스로 분명해진 다음에는 선택이 남을 뿐이니까.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출처 http://scienceon.hani.co.kr/?act=dispMediaContent&mid=media&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C%82%AC%EB%AC%BC%EC%9D%B8%ED%84%B0%EB%84%B7&document_srl=386696





인공지능 대란(?) 이후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가 희미에 지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 읽어보자.


인공지능과 우리뇌에서, 구별하기와 표상하기

송민령 2016. 06. 07
[3] 표상과 자아 ①: 표상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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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신경망의 성능이 과거의 인공지능에 비해 월등한 것은 

특징과 잡음을 가리지 않고 요소들을 인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요소들이 조합된 시스템을

표상해내는 유연함과 포용성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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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 표를 보고 고양이와 관련된 항목에 빨간 체크, 개와 관련된 항목에 노란 체크를 표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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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고양이를 길러본 적이 없는 나의 경우는 아래와 같다.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 개보다는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사람, 개에게 물린 적이 있는 사람 등등, 사람에 따라 체크의 패턴은 달라질 것이다. 체크의 패턴은 개와 고양이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즉, 개와 고양이에 대한 나의 표상(representation)이 어떤지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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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상은 살아가는 동안 축적한 정보의 패턴이며,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과 감정, 경험적 에피소드, 지식 등 다양한 정보로 이루어져 있다.[1] 비슷한 환경적, 문화적 맥락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유사한 표상을 공유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개’나 ‘고양이’처럼 대단히 일반적인 경우조차, 표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저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표상은 무엇에 쓰이는가?



인공 지능과 표상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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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시킨 일을 인공지능이 똑똑하게 수행하려면 입력된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2] 예컨대, 개에게는 개 사료를, 고양이에게는 고양이 사료를 주는 것처럼 간단한 작업을 수행하려면 입력된 사진 속에 개 또는 고양이가 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이 작업은 오랜 세월 인공지능 분야의 난제였다.


개인지 고양이인지를 구분할 수 있으려면, 개들에게서는 공통되지만 고양이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feature)을 추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 다수의 입력 데이터에서 특징을 추출하여, 개 또는 고양이와 같은 범주에 대한 표상을 학습하는 과정을 표상 학습(representation learning) 또는 특징 학습(feature learning) 이라고 부른다.[2]


00rep3.jpg»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일은 쉬워 보여도 쉽지 않다. 동물들의 모양과 자세, 배경색 구분…, 각 픽셀의 내용은 사진마다 크게 다르다. 출처/ pixabay.com 등에서 수집


거에는 사람이 개와 고양이의 구별에 유용할 법한 특징들을 일일이 설정해주는 방식으로 컴퓨터 인공지능에게 표상 학습을 시켰다. 컴퓨터는 사람이 설정한 특징들을 어떻게 조합해야 개와 고양이를 구별할 수 있는지만 학습했다. 여러 종류의 특징과 학습 알고리즘이 고안되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컴퓨터가 사람만큼의 정확도로 개와 고양이를 구별해내는 일은 요원해 보였다.


00rep4.jpg» 과거 인공지능의 학습방법. 출처/ http://web.engr.illinois.edu/~slazebni/spring14/lec24_cnn.pdf 


반면, 오늘날의 심층 인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은 개와 고양이의 사진을 무수히 입력 받는 동안 단위들 간의 연결 세기를 스스로 조절하며 표상 학습을 한다. 지난번 연재 글에서 다룬 감독학습 (supervised learning)처럼 신경망의 출력 결과가 맞는지 틀린지 피드백을 줄 수도 있지만 피드백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 비감독 학습(unsupervised learning) 만으로도 놀라운 수준의 학습이 일어난다.



인공 신경망의 표상 학습: 헵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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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rep5.jpg» 인공신경망.인공 신경망의 표상 학습에서는 단위들 간의 인과관계가 연결 세기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인공 신경망의 기본 구조은 지난번 연재 글 참고). 


른쪽 그림의 신경망에서 단위 A와 B를 생각해 보자. 단위 A가 출력을 내지도 않았는데 단위 B가 출력을 내거나, 단위 A가 출력을 냈는데도 단위 B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두 단위들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위 A가 출력을 낸 뒤에 단위 B가 출력을 낸다면 A의 출력이 B의 출력을 유발했다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두 단위 사이에 인과적 관계가 있을 때만 이 둘 사이의 연결을 강화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연결을 약화시키는 방식을 헵 규칙(Hebbian rule)이라고 한다.[3]


이제 아래 그림 A처럼 출력층의 단위들이 입력층의 모든 단위들과 약하지만 무작위적인 세기로 연결된 인공 신경망을 생각해 보자.[3] 그리고 아래 그림 B처럼 줄 두 개로 구성된 입력들을 무작위적인 순서로 넣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00rep6.jpg» 좌: 입력층 단위의 붉은 색이 강할수록 화살표로 표시된 출력 단위와의 연결 세기가 강하다. 다른 출력 단위들도 이처럼 입력층의 모든 단위들과 약하지만 무작위적인 세기로 연결되어 있다. 우: 줄 두개로 구성된 입력들. 시뮬레이션 출처/ https://grey.colorado.edu/CompCogNeuro


입력층의 단위들과 무작위적으로 연결된 출력층 단위들은 여러 입력들을 받는 동안 이렇게든 저렇게든 출력을 내게 된다. 출력층 단위 중에는 아래 그림 A와 같은 입력이 들어왔을 때 출력을 일으킨 단위(빨간 화살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헵 규칙에 의해서 이 출력 단위는 입력된 줄 두개를 구성하는 입력 단위들과 더 강한 연결 세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신경망에 아래 그림 B와 같은 두번째 입력이 가해졌는데 우연찮게 같은 출력 단위가 또 다시 활성화 되었다고 하자. 이 출력 단위와 입력층 단위들 간의 세기는 헵 규칙에 따라 수정될 것이고, 그 결과 이 출력 단위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입력에서 공통되는 특징인 두 번째 세로줄과 특별히 강한 연결 세기를 가지게 된다.[4]


00rep15.jpg» 헵 규칙(Hebb rule)에 따라 신경망이 특징(feature)을 표상하는 과정. 출력 단위와 입력 단위들 간의 세기가 강할수록 노랗게 표시된다. 화살표로 표시된 출력 단위는 두 번의 입력에서 공통되는 부분인 두 번째 세로줄을 표상하게 되었다. 시뮬레이션 출처/ https://grey.colorado.edu/CompCogNeuro


런 과정이 반복됨에 따라, 이 출력 단위는 두 번째 세로줄하고만 강한 연결을 갖고 나머지 입력 단위들과는 약하게 연결된다. 이때, 이 출력 단위가 두 번째 세로줄이라는 특징(feature)을 표상(represent)한다고 하고, 이 두 번째 세로줄을 특징(feature)이라고 한다. 아래 동영상처럼 학습이 진행됨에 따라 여러 출력 단위들이 입력을 구성하는 가로줄 또는 세로줄을 표상하게 된다.


https://youtu.be/5X8WT3Tav4s 동영상에서 신경망의 위에 있는 표는 각 출력 단위의 연결 세기들이 학습이 진행됨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뮬레이션 출처/ https://grey.colorado.edu/CompCogNeuro ]


특징은 입력 단위들의 특정한 조합 방식을 뜻한다. 앞서 보여준 입력들만 사용하는 한, 신경망을 아무리 오래 학습시켜도 대각선 모양의 특징을 표상하는 출력 단위는 생기지 않는데, 이는 입력 데이터에 대각선 모양의 조합 방식이 없기 없기 때문이다. 입력된 데이터에서 자주 나타나는 조합 방식이 특징이기 때문에, 특징은 다르지만 어딘지 비슷한 대상들에서 공통 속성을 찾아 범주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또한 특징은 여러 개별 입력들에서 공통된 부분이므로, 특징이 표상된 출력층은 입력층보다 한 단계 더 추상화된다.



인공 신경망의 표상 학습: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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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rep8.jpg» 인공신경망에 경쟁이 필요한 이유. 시뮬레이션 출처/https://grey.colorado.edu/CompCogNeuro그런데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서로 다른 출력 단위들이 동일한 특징을 중복해서 표상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위 동영상에서 학습이 끝났을 때(오른쪽 그림)를 보면, 같은 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출력 단위들은 같은 특징들을 표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중복의 정도가 지나치면, 다수의 출력 단위가 빈도가 높은 소수의 특징을 표상하는데 집중되는 반면, 빈도가 낮은 특징을 표상하는 출력 단위는 하나도 없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3]


신경망에서는 출력 단위들 간의 경쟁을 통해서 이런 현상을 방지한다. 강한 출력을 내는 단위만 남기고 나머지 출력 단위들은 강제로 꺼버리는 것이다 (아래 그림). 그런 뒤에 헵 규칙을 적용하면 강한 출력을 낸 출력 단위들은 헵 규칙에 따라서 연결이 강화되는 반면, 약한 출력을 낸 출력 단위들은 헵 규칙에 따라서 연결이 약해진다.


00rep9.jpg» 인공신경망에 경쟁이 필요한 이유. 시뮬레이션 출처/ https://grey.colorado.edu/CompCogNeuro


00rep10.jpg» 경쟁을 적용한 인공 신경망의 학습결과. 시뮬레이션 출처/https://grey.colorado.edu/CompCogNeuro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동일한 입력 특징을 여러 출력 단위들이 중복 표상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신경망이 표상할 수 있는 입력 특징의 레퍼토리가 다양해진다. 


오른쪽 그림은 위 동영상보다 강한 경쟁을 적용했을 경우의 학습 결과인데, 동일한 입력 특징이 중복 표상되는 경우는 줄어들고, 여분으로 남는 출력 단위들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여분의 출력 단위들은 나중에 색다른 입력을 접했을 때, 이 입력의 특징들을 표상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이처럼 단위들 간의 경쟁은 여러 개의 단위가 몇 개의 특징에 집중되지 않고, 다양한 특징의 표상에 분배될 수 있게 한다.



스스로 표상 학습 하는 인공 신경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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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경망이 깊게(deep) 쌓인 거대한 신경망이라면 신경망의 층을 하나 지날 때마다 빈번하게 나타나는 요소들의 조합(특징)이 표상되며 점점 더 추상화 된다(아래 그림). 그러다가 마침내, ‘개라는 범주에 속하는 동물들의 외양’처럼 상당히 추상화된 특징을 표상하고, 이로부터 개와 고양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5]


00rep11.jpg» 과거의 인공지능과는 달리 인공 신경망은 입력로부터 일반화된 특징들을 스스로 찾아낸다. 신경망 부분 출처/ http://neuralnetworksanddeeplearning.com/ 


람의 뇌처럼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훨씬 더 큰 신경망이라면,  위 그림의 주황색 상자에 해당하는 부분에, 이 글의 처음에 보았던 표와 비슷한 특징들이 표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꼬리 흔들기, 멍멍, 귀엽다 등의 조합이 반복해서 입력되다 보면 좀더 추상화된 개념인 ‘개’의 표상이 된다. 비로소 개가 무엇인가를 표상하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정답에 대한 피드백 없이 입력만 제공하더라도 인공 신경망은 헵 규칙과 경쟁을 통해 스스로 조직하며 표상 학습을 할 수 있다.[6] 사진 속의 물체를 인식하는 인공 신경망의 능력은 이미 인간의 수준을 넘어섰으며, 유투브와 같은 빅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청소, 고양이 등의 개념(표상)을 스스로 습득할 수 있다. 나아가 아래 그림처럼 사진의 내용을 언어로도 기술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7] 인공지능이 외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래 동영상 참고)

00rep12.jpg» [ 사진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인공지능. 한글 설명은 필자가 인공지능이 영어로 서술한 것을 번역한 것. 출처/https://youtu.be/t4kyRyKyOpo

https://youtu.be/t4kyRyKyOpo ]


인공지능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다니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그런데 신경망으로 이뤄진 사람의 뇌에서도 표상 학습이 일어난다. 인공지능과 의식, 직업에 대한 염려 등은 차차 논의하기로 하고, 우선은 ‘인공 신경망을 통한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라는 선물부터 챙기자.



내적 표상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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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모델인 표상은 우리가 외부 세계를 인식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1] 대부분의 감각정보들은 뇌에 들어올 때 시상(thalamus)이라고 하는 부위를 거치는데, 놀랍게도 눈에서 시상으로 들어가는 정보의 양은, 시각피질에서 시상으로 전해지는 정보의 1/6에 지나지 않는다. 청각, 촉각 등 다른 감각의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데 내적 표상에 대한 정보가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 것일까?


다음 음악 파일을 주의깊게 들어보자.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 음성파일 https://youtu.be/rQQk466rXYo ]


도저히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다면, 이번에는 다음 동영상을 보자.


[ 동영상 https://youtu.be/5vbOTYdGeFs ]


어떤가? 가사가 훨씬 잘 들리지 않는가? 음악 파일과 동영상은 둘 다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거꾸로 재생한 것이므로 가사가 없다. 그럼에도 동영상을 볼 때 가사가 들린다고 느껴지는 것은 자막을 읽으면서 활성화된 내적 표상이 소리의 부족하거나 모호한 부분을 메꿔 인식을 편향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개와 고양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술취한 친구가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것도, 모두 내적 표상의 덕분이다.


간은 언어를 통해서 내적 표상을 더욱 정밀하게 다듬고, 비슷하지만 다른 표상들을 세분화하고, 마음 속 시뮬레이션을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대학에서 전문 용어를 배우고, 학습한 전문 용어를 사용해서 어려운 전공 내용을 공부하던 때를 떠올려보면, 언어가 표상의 습득, 제련, 사용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할 수 있다.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책 <목소리를 보았네>에서 언어를 배우지 못해 정신적으로 결핍된 삶을 살아가는 청각장애인들을 통해서, 언어가 소통이라는 사회적 기능뿐 아니라 사고의 재료라는 지적인 기능도 수행한다고 지적한다.[8]


선천성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뒤늦게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살펴보면, 수많은 개별 입력을 일반화하는 인공 신경망의 표상 학습처럼, 단어도 개별 현상들을 일반화하는 과정을 거쳐 학습되는 것으로 보인다.[8] 이 아이들이 “의자” 같은 단어가 특정한 의자 한 개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의자의 속성(의자성)을 지니는 여러 사물을 통칭하는 것임을 처음으로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는 수많은 의자와, 의자가 아닌 여러 사물들에 대한 경험을 일반화, 추상화하여 “의자성”이라는 표상을 형성하고, 의자성을 가지는 사물들을 “의자”라는 기호로 상징한다는 규칙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리버 색스는 감각기관으로 접하는 순간순간의 현상 세계에 머물러 있던 청각장애 아동들이 단어들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며 지적인 능력이 눈부시게 깨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언어를 통해 외부 세계를 내면에 표상하고, 이 표상을 활용해 외부 세계를 변화시키면서 아이들은 세상과 깊이 관계맺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처럼,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여 도덕, 화폐, 법률, 국가 등 온갖 표상을 상상해 내고 서로 공유해 왔다. 그리고 공유된 표상을 현실 속의 제도, 풍속, 문화로 구현함으로써 문명을 이룩했다.[9]



경계선이 없는 자연과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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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토록 유용한 표상도 사용하기에 따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표상은 경험을 일반화하여 구축한 내면의 모델이지만 우리는 이 순서를 뒤집어, 내적 표상을 기준으로 외부 현상을 판단하곤 한다. 과거에 인공지능을 설계할 때,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게 하는 특징을 사람이 직접 설정해주고, 컴퓨터가 이 특징들을 활용하도록 한 것 자체가 표상을 기준으로 현상을 판단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개와 고양이를 쉽게 구분하지 못했던 과거의 인공지능처럼 문제에 봉착하곤 한다. 


아래 사진 속의 인물은 남성일까, 여성일까? 아무리 뜯어봐도 여성인 이 단거리 주자는 2014년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는 이유로 여성 종목의 참여가 금지되었다.[10] 이 사건은 남성과 여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구분할 것이냐라는 논란을 일으켰다.


00rep13.jpg» 여성 종목의 참가를 금지 당했던 인도의 육상선수 두티 찬드(Dutee Chand). 출처/https://www.youtube.com/


은 사람들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성과 여성성의 분포는 스펙트럼에 가깝다.[11] 자녀를 몇이나 낳은, 아무리 뜯어봐도 정상적인 남성(또는 여성)이 미분화된 여성(또는 남성) 생식기를 가진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지 않다. 성염색체가 XX이면 여성, XY이면 남성이라고들 알고 있지만, 덜 전형적인 생식기 발달을 보이는 경우는100명 중의 1명꼴로 추산된다.


임신 중에 자녀의 세포가 모체로 들어와서, 혹은 모체의 세포가 자녀의 몸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심지어 흔하게 일어난다.[11] 자녀의 세포는 어머니 몸 속의 다양한 장기에 통합되어 수십 년 간 체류하곤 한다. 자녀가 아들인 경우, 아들의 몸 안에 여성인 어머니의 XX 성염색체가, 여성인 어머니의 몸 안에 아들의 XY 성염색체가 섞여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 그러할 뿐인 자연(自然)에는 남녀의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표상을 구축하고는 그것을 객관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경계선이 없는 자연을 무리하게 구분하다 보면 앞에서 본 단거리 주자의 경우같은 문제가 생기곤 한다. 주최측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하나의 요인을 기준으로 테스토스테론 이외의 온갖 요인들이 다양하게 조합된 시스템인 여성 또는 남성을 구분하고자 하였다. 이런 방식은 테스토스테론은 남녀를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feature)인 반면, 나머지 요소들은 별 상관이 없으므로 상쇄(average-out)될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컨대, 남성 집단과 여성 집단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비교해보면, 각 집단 내의 편차를 고려하더라도 남성 집단의 테스토스테론 평균이 여성 집단보다 높다(아래 그림). 반면, 남성 집단과 여성 집단은, 각 집단 내의 편차를 고려했을 때 별반 다르지 않다. 이 경우, 상쇄된 편차인 시력은 남녀 구분에서 중요치 않은 신호, 잡음으로 간주된다. 특징과 잡음을 나누는 이런 접근은 평균과 표준편차로 집단을 설명하는 정규 분포 및 정규 분포를 활용하는 통계 기법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12]


00rep14.jpg» 정규분포를 사용한 집단의 구분. 정규 분포의 사용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므로 데이터의 모양은 실제의 테스토스테론 수치 및 시력과는 무관하다. 


문제는 특징과 잡음(혹은 신호와 소음)의 구분이 자연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관측자가 임의로 결정했다는 데 있다. 이처럼 특징을 규정하는 방식은 과거의 인공지능이 그러했듯이 얼마간의 효과는 있겠지만 불충분하다. 잡음에 해당하는 요소들이 개인 내에서 입체적으로 작용함을 무시한 채 평면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이 요소들이 집단 내에서 상쇄(average-out)될 것이라고 넘겨짚는 것도 문제다. 이래서야 집단 간의 비교는 할 수 있어도 개인 간의 비교는 어렵다.[13]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뇌신경망 등의 시스템이 겉보기에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구성 요소들을 조율하는 방법은 입체적이고도 다양하다.[14][15] 하나의 요소가 너무 강하거나 약해지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던 요소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분포되고 다르게 작동하면서 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다. 인공 신경망의 성능이 과거의 인공지능에 비해 월등한 것도 특징과 잡음을 가리지 않고 요소들을 인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요소들이 조합된 시스템을 표상해내는 유연함과 포용성 덕분이다.



표상의 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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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경계선이 없고 표상의 모호한 경계는 문제를 일으킨다면, 표상은 유용함에도 불구하고 헛된 걸까? 문제는 표상 자체가 아니라 표상들이 주변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습관에 있다. 다음 이야기를 보자.


강에 살던 물고기 한 마리가 낚시꾼들이 “이야~ 물 참 좋다!”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이 물고기는 물이 뭔지는 몰라도 그렇게 좋다니 꼭 한번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길을 떠난 물고기는 갖은 고생 끝에 마침내 물이 뭔지를 깨닫고 고향에 돌아왔다. 친구들은 기대에 차서 물이 뭐냐고, 물이란 게 그렇게 좋더냐고 물었다. 당신이 이 물고기라면 평생을 물 안에서만 살았던 친구들에게 물이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맥락과 관계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기준점에 따라서 달라진다. 지구를 기준으로 보면 천동설이고, 태양을 기준으로 보면 지동설이다. 주류 집단의 남녀 표상에 따라 트랜스젠더(transgender; 몸과 마음의 성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의 남녀 표상을 “정상화” 하는 전환 “치료”를 강제하는 것은 이들에게는 폭력이 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한 트랜스젠더가 전환 치료를 거부하다 자살했고, 이 사건이 트랜스젠더들의 인권에 관심을 모으면서, 오바마의 동성결혼 합법화에도 힘을 실어주었다.[16]


또한 상대적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추의 역사>를 쓰기 위해서 <미의 역사>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느리다를 생각하지 않고는 빠르다를 생각할 수 없고, 여성성을 재정의 하는 순간 남성성도 재정의 된다.[17] 표상의 경계를 긋는 순간 안팎이 생겨나고, 하나의 표상을 정의하는 순간, 인접한 표상들의 속성도 덩달아 바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맥락에 의존한다. 갈릴레오가 뜻을 지킨 것은 소신이라고 하고, 필름회사 코닥이 뜻을 지킨 것은 어리석은 고집이라고 한다.[18] 뜻을 지키는 데 목숨도 걸었던 갈릴레오를 두고 코닥을 지나치다고 하는 것은 적절함이 정도의 중간이 아니라, 용법의 중용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유불급은 한치도 넘어서도 모자라서도 안되는 완전무결한 표상으로서의 중간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명한 상황 판단과 상황에 맞는 용법을 지향한다.


락과 관계에 따라 달라지기에, 모든 표상은 수단인 동시에 약점이 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며 여성을 얕보고 남성들의 리그에서 배척하던 시절, 여성을 얕보았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내 대장부들’은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아녀자들’의 일에 낄 수 없었다. 마나님들은 곳간 열쇠를 꼭 쥐고 있다가 죽을 때면 며느리에게 넘겼다.


표상의 이런 속성을 알면 하나의 표상을 바꾸기 위해서 여러 다른 표상들과 맥락을 활용하는 전략을 훈련할 수 있다. 동서고금 최고의 병법서라는 <손자병법>은 전쟁을 논한다면서 정치, 법률, 경제, 도덕 등 온갖 것을 다채롭게 구사한다. 오늘날의 정치와 마케팅도 사람들이 어떤 표상을 어떤 맥락(프레임)에서 어떤 표상과 연관지어 인식하게 하느냐 하는 표상들의 전쟁이다.[19]


그래서 다양한 표상과 그 용례를을 확보하고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은 내가 가진 패를 늘리는 것과 비슷하다.


나와 다른 타인의 표상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점에서 보면 내가 가진 표상의 레퍼토리를 확장해주는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콜럼버스의 계란처럼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를 못해서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찬물 마시는 것도 보고 따라하면서 점점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된다. 좀더 자라면 이해와 공감을 보태 타인의 표상을 좀더 정교하게 벤치 마킹할 수도 있고, 반면교사처럼 타인의 표상을 뒤집어 습득할 수도 있게 된다.


낱의 표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따로따로 동작한다고 여길 때보다, 또 모든 표상이 환상이라고 여길 때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신나지 않는가? 표상이 객관이라던 관점(정)에서, 모든 표상이 헛되다는 관점(반)에서, 표상은 관계와 맥락에 위치시켜 사용하기 나름이라는 관점(합)까지.


인공지능이 좀 낯설더라도 선물은 마음에 들었길.◑   [②편 글]


[주]


[1] The Brain with David Eagleman: What Is Reality? BBC Documentary (2016).https://www.youtube.com/watch?v=3MSw2irv0-A

[2] Y Bengioy, A Courville, & P Vincenty (2014) Representation Learning: A Review and New Perspectives. arXiv.

[3] RC O‘Reilly & Y Munakata. Computational explorations in cognitive neuroscience. MIT Press (2000).

[4] 최근에 받은 입력의 영향을 얼마나 크게 받는지는 학습율(learning rate)에 따라 달라진다. 학습율이 크면 클수록 최근에 받은 입력의 영향이 커지는데 그만큼 이전에 학습한 내용이 빠르게 지워지므로 좋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본문에서처럼 우연히 하나의 특징을 공유하는 입력이 연이어 주어진다면 몰라도, 다양한 입력들이 무작위적으로 들어올 때 학습율이 높으면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잊는 과정이 반복되어 학습의 진척이 없다.

 지난 번과 이번 연재에 설명된 인공 신경망은 대단히 단순화된 것으로 알파고나, 물체 인식에 쓰이는 신경망과는 다르다. 이들 신경망의 각 층은 서로 부분적으로 중첩되는 기둥들로 구성되곤 하므로 한 층이 기실 한 층이 아니다. 이런 구조의 신경망을 convolutional neural network라고 하는데 시각 피질의 구조에서 착안한 것이라 한다. 이 방법을 활용하면 심층 인공 신경망의 막대한 계산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과적합(over-fitting) 문제에도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convolutional neural network 참고자료/http://cs231n.github.io/convolutional-networks/

[5] N Jones (2014) The learning machines. Nature 505:148.http://www.nature.com/news/computer-science-the-learning-machines-1.14481

[6] 신경망이 사람의 피드백도 받지 않고(비감독 학습) 스스로 연결 세기를 조절해간다는 측면에서 자기 조직망(self-organizing map)이라고도 부른다.

[7] http://cs.stanford.edu/people/karpathy/deepimagesent/

[8] 올리버 색스, 목소리를 보았네, 알마 (2012). 올리버 색스는 언어습득에서 수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 어떤 형태의 언어든, 부모의 목소리를 비롯한 온갖 정보를 종합해 일반화, 추상화, 상징이라는 어려운 작업을 해내야 아기들이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 그런데 청각장애 아이들은 목소리 정보가 빠지다 보니 이 과정에 진입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자녀가 청각장애를 가진 줄을 부모가 몰랐거나 (자폐증이나 지능 문제로 진단된 아이들 중 청각장애가 더러 있다고 한다), 아이가 청각장애를 가진 사실이 드러나는 게 싫어서 ‘정상인’들의 입말만 억지로 가르치려다 보면, 아이들이 이 과정에 진입하는 시기를 놓치기 쉽다.

 반면, 부모가 청각장애인 덕분에 ‘청각’의 결여를 보완해줄 ‘시각’적 인 정보, 수화를 어려서부터 습득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이 아이들은 일반화, 추상화, 상징화 과정을 이미 해봤기 때문에 수화 형태의 언어조차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서 훨씬 더 빨리 글자와 입말을 배운다. 이 책을 통해 수화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입말을 하는 사람들과 사고 방식도 다르다는 걸 알고 수화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수화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 보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9]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2015).

[10] Dutee Chand, female sprinter with high testosterone level, wins right to compete. (NY Times2015.7.27)

[11] Claire Ainsworth (2015) Sex redifined. Nature 518: 288-291.

[12] 데이비드 살스버그, 통계학의 피카소는 누구일까, 자유아카데미 (2011).

[13] 샤론 버치 맥그레인, 불멸의 이론 - 베이즈 정리는 어떻게 250년 동안 불확실한 세상을 지배하였는가, 휴면 사이언스 (2013).

[14] E Marder (2011) Variability, compensation, and modulation in neurons and circuits.  PNAS108: 15542-15548.

[15] E Marder (2012) Neuromodulation of neuronal circuits: back to the future. Neuron 76: 1-11.

[16] Obama Calls for End to ‘Conversion’ Therapies for Gay and Transgender Youth. (NY Times2015.4.8)

[17]https://www.ted.com/talks/jackson_katz_violence_against_women_it_s_a_men_s_issue?language=ko

[18] 125년 코닥 필름 끝내 사라진다 (경향신문 2013.8.21). 카메라/필름 회사 코닥은 한 때 필름과 필름 카메라의 대명사와도 같았다. 그러나 전자 카메라의 부상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는 대신 필름 카메라만을 고수하다2013년, 125년의 화려한 역사를 뒤로한 채 사라졌다. 코닥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한 회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19] 조지 레이코프 & 로크리지 연구소. 프레임 전쟁. 창비 (2007).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출처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386618

인공지능의 학습 과정은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다고 생각함.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다! 2016 아벨상 수상자 앤드루 와일스

350년간 풀리지 않았던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스 <출처: Kanijoman at flickr.com / CreditCharles Rex Arbogast/AP>

2016년 3월 15일,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연구소의 앤드루 와일스 교수가 2016년 아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와일스는 2016년 5월24일,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상을 받았다. 필즈상과 더불어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 상을 앤드루 와일스가 받는 것에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는 약 350년간 풀리지 않았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최초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28세로 요절한 19세기 노르웨이의 천재 수학자 닐스 헨릭 아벨을 기려, 2002년부터 노르웨이 정부에서 탁월한 업적을 발표한 수학자에게 매년 수상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뭐길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영어로는 Fermat’s Last Theorem, 이하FLT)’는 보기에는 쉽지만 증명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의 대표적인 예다. 수학을 취미삼아 연구했던 17세기 프랑스의 법률가 피에르 드 페르마는 피타고라스의 정리(x2+y2=z2)를 약간 다르게 바꾼 식을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의 귀퉁이에 써 놓았다.

xn+yn=zn
n이 3 이상의 정수일 때, 이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간단한 이 문장이 바로 FLT다. 아마추어 수학자가 증명없이 남긴 이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수학자가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FLT는 19세기에도 난해한 문제로 유명했는데, 마지막까지 아무도 증명하지 못해 마지막 정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수학의 왕자’로 불렸던 가우스도 FLT를 ‘정리의 진위 여부를 증명할 수 없는 수학정리’라고 언급했다.

이 문제를 증명한 것이 바로 ‘앤드루 와일스’다. 그는 열 살이던 1963년에 에릭 템플 벨이 쓴 <최후의 문제>라는 책에서 FLT를 처음 발견했다. 사이먼 싱의 책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서 와일스는 어린 자신도 이해할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에 앤드루 와일스가 언젠가 이 문제를 풀어내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마지막 증명을 완성하기까지

* 에른스트 쿠머는 소수를 정규 소수와 비정규 소수로 나눴다. 100 이하의 소수 중 37, 59, 67만 빼고는 모두 정규 소수다.

1957년 일본인 수학자 타니야마 유타카와 시무라 고로는 ‘모든 타원방정식은 모듈 형태와 하나씩 대응되는 관계다’라는 ‘타니야마-시무라 추론’을 떠올렸다. 이들은 이 추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증명은 하지 못했다.

타니야마 유타카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무라 고로는, 타원곡선과 모듈 형태와의 연관성에 관한 추론을 발전시켰다. <그림: GYassineMrabetTalk✉ at wikimedia.org>

1984년, 독일 수학자 게르하르트 프라이가 최초로 페르마의 방정식(An+Bn=Cn)을 타원방정식 형태(y2=x3+(An-Bn)x2-AnBn)로 바꿀 수 있다고 발표했다. 프라이가 만든 방정식 덕분에 수학자들은 타니야마-시무라 추론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986년, 프라이의 발표를 들은 미국 수학자 켄 리벳은 프라이가 만든 타원 방정식이 ‘모든 타원방정식을 모듈 형태로 바꿀 수 있다’는 타니야마-시무라 추론을 깨는 예임을 알아냈다. 만약 타니야마-시무라 추론이 맞다면 프라이의 방정식은 존재할 수 없는 식이고, 다시 말해 페르마의 방정식(An+Bn=Cn)은 성립할 수 없다. 즉, 타니야마-시무라 추론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면 (An+Bn=Cn)을 만족하는 정수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게 되는 셈이다.

1993년 앤드루 와일스는 타니야마-시무라 추론을 증명해냈다. 즉,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것이다. 그는 강연을 통해 이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됐다는 소식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역사적인 강연 현장 속으로

와일스는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아이작 뉴턴 연구소에서 열리는 세미나에서 오랜 연구의 결실을 발표하기로 마음먹었다. 강연 제목은 ‘모듈 형태, 타원방정식, 그리고 갈루아 군의 표현’으로, 여러 수학자가 참석하는 세미나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주최측의 배려로 특별히 와일스만 며칠 동안 세 번에 걸쳐 강연을 할 수 있었다.

와일스는 강연 직전까지도 무엇을 증명했는지 밝히지 않았고, 첫 번째와 두 번째 강연을 들은 동료 수학자들 역시 그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지 못했다. 동료들은 이메일을 통해 마지막 강연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마지막 강연이 있었던 1993년 6월 23일, 와일스의 강연장에는 200여 명의 청중이 몰려들었다. 와일스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완성한 켄 리벳을 포함한 여러 수학자와 대학원생 앞에서 증명을 완성해 나갔다. 증명을 끝내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칠판에 쓴 그는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발표를 마쳤다.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노르웨이 과학 학술원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스를 2016년 아벨상 수상자로 결정했다. <출처:Heiko Junge/NTB scanpix>

와일스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업적을 인정받아 국제수학연맹이 수여하는 기념 은판, 울프상, 쇼상 등 각종 상의 주인이 됐다. 이런 와일스에게 아벨상이 수여된다는 소식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도전 정신과 그의 증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고은영 (eunyoungko@donga.com| 기자
참고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2&contents_id=118169&leafId=22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팟캐스트를 들은 적이 있는데 페르마의

편지지의 쓸 부분이 얼마 남지 않아 증명을 적지 않겠다 라는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천재는 다르구나.

4D 프린팅 자가변형이 가능한 재료를 3D프린터로 찍어내다

4D 프린팅은 물리적, 생물학적 물질들이 모양과 특성을 바꿀 수 있도록 프로그램 하는 것이다.

필자가 일하는 KISTI는 매년 10대 미래유망기술을 발표한다. 지난해 12월에 뽑은 기술 중에는 2년 전 급부상한 신기술인 ‘4D 프린팅’이 있다. 3D 프린팅도 이제야 혁명전야를 맞았는데, 미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4D 프린팅은 도대체 어떤 기술일까.

커다란 집을 3D 프린터로 출력한다고 생각해보자. 집 만한 프린터가 있다면 좋겠지만,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얘기다. 방법은 뭘까. 작은 조각들을 인쇄해 조립하는 것이다. 최근 3D 프린터로 지은 집들은 대부분 이렇게 만들었다.DIY가구를 조립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것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바로 이 점이 3D 프린팅의 한계다. 물체를 빠른 속도로 한 번에 찍어낸다는 본래 의미가 퇴색되는 셈이다. 어떻게 하면 프린터보다 더 큰 물체를 찍어낼 수 있을까.

로봇이 스스로 변신

이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주목받는 신기술이 ‘4D 프린팅’이다. 2013년 4월, 미국 MIT 자가조립연구소 스카일러 티비츠 교수가 ‘4D 프린팅의 출현(The emergence of 4D printing)’이라는 제목의 TED 강연을 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고, 누적 조회수 약 200만 회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강연 영상을 보면 1차원 선이 물 속에서 3차원 정육면체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MIT 스카일러 티비츠 교수팀의 4D 프린팅 강연 동영상 보기)

이 기술의 핵심은 형상기억합금 같은 스마트재료를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것이다. 출력된 물체는 시간 또는 주변 환경이 변하면 다른 모양으로 변신한다. 이 기술에 4D란 이름이 붙은 것도 기존의 3차원 입체(3D)에 시간이라는 1차원(1D)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모양으로 바꾸게 할지는 엔지니어가 미리 프로그래밍 한다(스마트재료에 내장한다).

자가변형 또는 자가조립 기능이 가능한 스마트재료를 3D 프린터로 출력하고, 출력된 물체는 재료에 내장했던 프로그램에 따라 시간 또는 주변 환경이 변하면 다른 모양으로 변신한다.

‘4D 프린터’로 찍어낸 물체는 인간의 개입 없이 열이나 진동, 중력, 공기 등 다양한 환경이나 에너지원에 자극 받아 변한다. 마치 전선이나 모터 없이 로봇을 움직이겠다는 말이다. 놀랍게도, 나노공학에서는 가능하다. 바로 자가변형(selftransformation) 또는 자가조립(self-assembly)이라는 기술이다. 단백질 같은 생체분자들이 스스로 결합해 특정 모양을 갖추는 원리를 공학적으로 응용한 건데, 몸 속에서 특정 환경에 노출됐을 때 뚜껑을 열어 약물을 전달하는 나노로봇이 대표적이다. 다시 말해 자가변형 또는 자가조립 기능이 가능한 물체를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게 4D 프린팅이다. 문제는 나노기술을 사람 눈에 보이는 크기로 구현한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2007년부터 작은 분자를 결합해 눈에 보이는 3차원 물체를 만드는 기술을 모색했지만 실패했다. 미시와 거시 세계에서 물체가 일관되게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체는 나노미터(nm) 스케일로 작아지면 구조와 성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예컨대, 금 덩어리는 노란빛을 띠지만 나노미터 크기의 금가루는 빨간색이나 보라색을 띤다.

다행히 3년 뒤, 미국 MIT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CSAIL) 다니엘라 루스 교수와 에릭 드메인 교수, 그리고 하버드대 공학및응용과학대 로버트 우드 교수가 모인 연구팀이 종이접기 형태의 로봇을 제안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연구팀은 가로 세로 길이 약 5cm 가량의 종이접기 로봇을 종이비행기와 종이배로 스스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때는 3D 프린터를 이용하지 않았지만 3년 뒤에는 몸체에 형상기억합금과 전기회로를 내장한 종이접기 로봇을 3D 프린터로 제작했다. 전기를 흘려 열을 내면 형상기억합금이 움직이면서 개구리 모양으로 스스로 변신한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형상기억합금과 전기회로를 내장한 종이접기 로봇. 특정 조건이 되면 미리 프로그래밍 한 개구리 모양으로 접힌다(오른쪽 사진).

자가조립(self-assembly)이란?
자연계의 생체분자는 다른 생체분자를 인식하는 능력이 있는데, 이는 ‘분자 인식 원리’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단일 DNA가닥은 반대쪽 단일 DNA가닥을 인식하고 둘이 결합해 이중 DNA가닥을 형성한다. 항체가 특정 항원에 결합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이런 분자 인식 원리를 바탕으로 한 자가조립 기술은 자연계에서 수십 억 년 동안 복잡한 생물체를 구성하는 데 이용돼 왔다. 그 예로, 나노크기의 생체물질은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세포 한 개를 형성할 때 자가조립 과정을 이용한다. 또한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세포는 사람의 몸과 같이 훨씬 큰 구조를 이루기 위해서 자가조립 과정을 이용한다. 우리 스스로가 자가조립 원리를 이용해 나노구조로부터 거대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산 증인이다.

* 자료 인용 : 홍승훈 저 ‘표면 유도 조립’ 물리학과 첨단기술 2007년 3월호

차 디자인, 내 기분 맞춰 달라진다

이들에 질세라 스카일러 티비츠 MIT 교수도 독자적으로 연구를 계속해왔다. 2011년 2월 ‘우리는 스스로 조립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는가(Can we make things that make themselves)’라는 제목으로 6분짜리 TED 강연을 했는데, 이때 스스로 조립하는 막대인 ‘편향 체인’을 소개했다. 일직선으로 늘어져 있던 길다란 체인은 손으로 흔들자 3차원 구조체로 변신했다. 원리는 이렇다. 체인의 각 요소에는 두 가지 값이 있는 스위치가 내장돼 있다. 손으로 흔들면 스위치 값이 변하면서 각 관절이 정해진 방향으로 뒤틀린다. 마치 DNA를 구성하는 4개의 염기(A, C, T, G)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조합되는 것과 같다. (TED 강연 동영상 보기)

4D 프린팅은 머지않은 미래에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될 전망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모든 플라스틱과 금속 부품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날씨(비 오는 날)나 주변 환경(소금기 많은 도로 등)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코팅기술이 개발되면 자동차 부품의 수명이 늘어날 수 있다. 자동차 차체를 프로그래밍 가능 재료로 제작하면 운전자의 취향과 기분에 따라 외관을 자유롭게 바꿀 날이 올 것이다.

교량이나 도로가 파손됐을 때 스스로 복구되는 재료로 만들 수도 있다. 국방 분야에서는 위장막이나 위장복에 활용될 자가변형 천이 가장 각광받고 있다. 가령, 물만 뿌리면 스스로 우뚝 서서 펼쳐지는 천막 막사가 가능하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자가변형이 가능한 생체조직부터 인체에 삽입하는 바이오 장기까지 다양하다. 또 몸 안에 들어가 암세포를 잘라내고 끊어진 혈관을 잇는 나노로봇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4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면 운전자 기분에 따라 차 외관을 바꾸고 파손된 도로를 스스로 복구시킬 수 있다.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재료로 벽을 출력하면 스스로 더 큰 집으로 조립될 날도 올 것이다.

4D 프린팅 연구는 한동안 지금처럼 소재 개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현재는 플라스틱 합성수지가 많지만, 앞으로는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금속이나 유리, 목재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전망이다. 미국 육군 연구국은 신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피츠버그대, 하버드대, 일리노이대 공동 연구팀에 미화 85만5000달러(우리 돈 약 9억 원)를 지원했다. 4D 프린팅 기술로 만든 완구 같은 단순한 물체는 5년, 보다 복잡한 형태는 20년 안에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가 사라진다

4D 프린팅 기술은 지금은 미국이 이끌고 있지만 2~3년 내에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도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4D 프린팅을 개발하고 있는 미국 연구기관에 중국인과 한국인, 일본인을 포함해 아시아계 연구자들이 상당히 많다. 기술 본토에서 역량을 쌓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연구자, 기업은 새로운 기회로 보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필자도 꾸준히 관련 기술을 모니터링 할 계획이다.

4D 프린팅은 분명 2015년을 기점으로 3D 프린터의 잠재력이 폭발하는 데 큰 에너지를 보탤 것이다. 영화에서만 봐왔던, 물체를 순간이동 시키는 미래가 우리 눈 앞에 와 있다. 티비츠 교수는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프로그래밍 코드를 이용해 현실세계의 물질을 제어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물인터넷(IoT)이 현실세계와 디지털 가상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듯 4D 프린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허물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자. 지금이 바로 혁명전야()다.


 <3D 프린터 카페>에 초대합니다.
3월 과학동아 카페 주제는 제조의 민주화 바람을 몰고 온 3D 프린터 기술입니다. 사람 살리는 바이오 프린팅과 시각장애 아동용 교구, 4D 프린팅 등을 전문가에게 들어보세요. 심진형 한국산업기술대 기계공학과 교수와 문명운 KIST 계산과학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이 함께합니다.

· 일시 : 2015년 3월 7일(토) 오후 2시
· 장소 : 동아사이언스 사옥 지하1층 사이언스홀 (서울 용산구 청파로 109)

흰금’이냐 ‘파검’이냐…수백만 명 옷 색깔 논란 이유는?

김서경 2015. 03. 16
추천수 0
 __book.jpg 김서경의 '인지과학 뉴스 브리핑'

 뇌의 비밀을 캐려는 인지·신경과학 연구가 활발하고, 그래서 뉴스도 잇따른다. 연구자인 김서경 님이 지구촌의 화제가 되는 인지신경과학 뉴스를 정리해 격주로 전한다.

* * *

00dresscolor1.jpg» 미국 매체 '버즈피드'가 '이 옷 색깔은 뭘까요?'라는 물음과 함께 게시한 사진(가운데)을 두고서 '흰색 바탕에 금색 줄무늬'(흰금, 왼쪽)와 '검은색 바탕에 파란색 줄무뉘'(파검, 오른쪽)라는 서로 다른 답들이 쏟아지면서 색채인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가운데가 원래 사진이며 왼쪽과 오른쪽은 '흰금'과 '파검'이 두드러지도록 일부러 보정한 것이다.출처/ Wired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작품을 다룬 영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를 기억하시나요? 영화에서 화가 베르메르는 창 밖에 떠 가는 구름을 가리키며 하녀 그리트에게 묻습니다. “무슨 색이지?” 그리트는 잠시 생각하다 노란색과 옅은 푸른색, 그리고 회색이라 대답합니다. 흔히 보는 구름은 흰색이기 마련인데, 그리트는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이제부터 설명하려는 ‘드레스 색깔 논란’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 드레스 색이 뭘까요’ 뜨거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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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dresscolor3.jpg» '드레스 색깔' 물음을 던진 버즈피드의 화면. 출처/ BuzzFeed.com지난 2월 말, 한 장의 드레스 그림이 인터넷과 에스엔에스(SNS)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문제는 색깔이었습니다. 흰색 바탕에 금색 줄무늬 드레스, 즉 “흰금”이라는 주장과, 파란 바탕에 검정 줄무늬 드레스, 즉 “파검”이라는 주장이 격돌했습니다. 처음 이 사진과 함께 ‘대체 이 드레스 색깔은 뭘까요?’라는 물음을 던진 <버즈피드(BuzzFeed)>의 설문 코너에 응답한 사람의 숫자는 무려 몇백만 명이 넘었으며, 테일러 스위프트며 줄리앤 무어 같은 연예인들도 논쟁에 합세하기도 했습니다.


“흰금”으로 보는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드레스가 “파검”으로 보일 수 있는지 도무지 영문을 몰랐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고로, 저의 경우엔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흰금”으로 보입니다.)


분명 “흰금”인 드레스가 왜 “파검”으로 보인다고 하는가? 또는 당연히 “파검”인 드레스가 왜 “흰금”으로 보이는가? 가십을 다루는 주간지부터 과학 전문 뉴스를 다루는 주요 미디어까지 이 기묘한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뒤따랐습니다. 먼저 <쿼츠(Quartz)>에 실린 “슬라이더를 사용해서 눈앞에서 바뀌는 드레스 색을 확인하세요”라는 글에서는 드레스 사진 아래쪽의 슬라이더를 좌우로 움직여 가며 색채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볼 수 있는 색상은 가산혼합의 결과이기에, 드레스의 색상은 빛의 밝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습니다.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의 “드레스는 흰금인가요 혹은 파검인가요”라는 기사에서는 드레스 사진의 ‘흰색(파랑)’과 ‘금색(검정)’ 부분을 각기 떼어내어 확대한 뒤 보여주었습니다. 따로 떨어지자, ‘흰색(파랑)’ 부분은 어두운 푸른색(steel blue, #4682b4)이며 ‘금색(검정)’ 부분은 탁한 겨자색(goldenrod, #DAA520)에 가까운 색이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이 색이 그림자 때문이라고 인식할 경우 원래의 드레스가 “흰금”으로, 엷은 오렌지색 불빛이 비쳐서 나타난 색이라고 인식할 경우 “파검”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한편 실제 드레스의 색상 옵션은 파랑-검정, 흰색-검정, 분홍-검정, 빨강-검정 이 넷뿐으로 흰색-금색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파랑-검정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게 전부일까요? <뉴욕타임즈>의 설명만으로는 왜 사람마다 드레스의 색을 다르게 인식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흰금” 대 “파검”의 비밀, 색채항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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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가 정말 파랑-검정이라면, 왜 사람마다 드레스 색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걸까요? <와이어드(Wired)>는 기사 “드레스 색깔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의 과학”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눈으로 들어온 빛은 다양한 파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파장이 건드린 수용기는 제각기 다른 신경망을 자극하여 뇌에 도달합니다. 일단 신경망 정보가 뇌에 도달하면 “우리 눈이 보고 있는 사물에서 튕겨나온 빛의 총량을 측정한 후 사물의 ‘실제’ 색에 가능한 한 가깝게 보이도록 더해진 빛을 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각 시스템은 주변 밝기에 관련된 정보를 추려낸 후 실제 사물이 반사하는 색채 정보만을 뽑아낸다”고 워싱턴대학의 신경과학자인 제이 네이츠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흰금” 파입니다).


편 색채 및 시각 전문가인 웰슬리대학의 신경과학자 베일 콘웨이는, 인간의 시각 시스템은 햇빛 속에서 사물을 보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하루종일 변화하는 가시광선 파장의 세기에 따라 색상을 달리 느끼기 쉽다고 합니다. 새벽엔 세상이 엷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가 낮이 되면서 푸른 백색이 강해지고, 다시 저물 무렵엔 석양처럼 붉게 변하는 식이죠. “어떤 사물을 볼 때, 시각 시스템은 익숙한 햇빛의 변화에 근거해 눈에 ‘보이는’ 색을 보정하게 됩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시스템에서 푸른색 파장을 보정하게 되면 “흰금”을, 노란색 파장을 보정하게 되면 “파검”을 보게 되는 겁니다.” (콘웨이 자신은 “파금”에 가깝게 본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자연 보정’ 현상을 일컬어 색채항등성(color constancy)이라 합니다.

00checkershadow_illusion.jpg» ‘체커보드 착시’. 출처/ 에드워드 아델슨, Wikimedia Commons

<아이오나인(io9)>은 “과학으로 설명하는 ‘대체 이 드레스 색깔이 뭐야?’ 논쟁” 기사에서 역시 <와이어드>의 글을 인용합니다. 네이츠와 콘웨이의 설명에 더하여 에드워드 아델슨 교수의 유명한 ‘체커보드 착시’를 예로 듭니다.위 그림에 등장하는 A와 B를 따로 떼어내어 비교하면 실제로는 같은 색이지만, 원통 아래 회색빛 속의 B는 우리 눈에 ‘흰색’으로 보이죠. 이 그림은 주어진 주변 환경의 맥락에 따라 색채항등성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어두운 네모꼴 사면에 밝은 네모꼴이 붙어 있기 때문에 대비가 강조될 뿐더러 둘째, 회색빛이 흐릿한 가장자리를 갖기 때문에 실제 세상의 그림자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이는 드레스 사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햇빛의 가시광선 파장 변화에 익숙한 우리 뇌가 드레스 옆에 언뜻 드러난 방의 밝기를 실제의 단서로 여기고 ‘자동보정’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색채항등성은 왜 다르게 작동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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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뇌가 햇빛 아래에서 사물을 보도록 진화했다면 왜 사람마다 자동보정의 결과가 다른 걸까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제 주변에서는 아침에 봤던 “흰금”이 저녁에 다시 보니 “파검”이었다든가, 잠시 책을 보고 돌아오니 “파검”이 “흰금”으로 변한 다음에 내내 그 상태를 유지한다든가, 하는 제보가 빗발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흰금”,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파검”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자동보정은 사람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반대로 뒤집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자동보정을 조절하는 결정적 요인인 걸까요?


<기즈모도(Gizmodo)>의 기사 “네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니? 드레스에 관한 설명”은 그 요인을 초기 시각 시스템, 즉 원추체와 간상체의 분포에서 찾습니다. 원추체는 색을 지각하는 수용기로서 빨강과 파랑, 녹색 세 종류가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간혹 두 종류밖에 없거나 네 종류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상체는 밝기를 지각하는 수용기로서 빛의 양이 적은 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입니다. <기즈모도>에 따르면 개개인의 망막에 분포하는 원추체와 간상체의 양, 그리고 드레스 사진을 보게 된 방의 밝기가 서로 다르게 상호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의 기사 “파란색 드레스인가요 흰색 드레스인가요? 우리가 다르게 색을 보는 이유”는 <기즈모도>의 기사처럼 초기 시각 시스템에 비중을 두는 듯합니다. 메릴랜드 실버 스프링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는 안과의사 닐 아담스의 의견에 따르면, 안구에 들어오는 빛이 특정 방향으로 꺾이면 파랑-검정을, 또 다른 방향으로 꺾이면 흰색-금색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갈색 안경을 꼈거나 백내장으로 인해 수정체가 탁한 경우에는 색을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아담스는 말했습니다. 시각심리학에 따르면 이는 바텀업 (bottom-up) 과정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해석입니다. 망막의 수용기가 최초의 빛 정보, 즉 주변에서 들어오는 빛의 파장에 어떻게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흰금”과 “파검”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탑다운 (top-down) 과정에 더 비중을 두는 해석도 있습니다. <가디언(The Guardian)>의 기사 “파검인가 흰금인가? 그 답은 시각심리학에 달려 있다”를 보면, 서섹스대학에서 아동의 색채항등성 발달을 연구하는 박사과정 학생 메리 로저스는 “색채항등성 메커니즘은 언제나 학습하며, 이런 학습 결과 덕분에 뇌의 색채보정이 달라지고 또 다른 경험을 낳게 된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런 과정이야말로 ‘흰금’으로 보이던 드레스가 ‘파검’으로 보이게 되는 원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동의 경우에는 어른보다 더 낮은 수준의 색채항등성을 지녔기 때문에 세상이 더 혼란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빛의 화가라 불리는 모네의 경우에는 일반인과는 다르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낮의 풍경을 처리하는 자동적 과정을 의식적으로 무시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잠시 <진주 귀고리 소녀>의 그리트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구름이 언제 어느 때나 ‘희게’ 보이는 건 색채항등성 때문이지만, 그의 눈은 그런 색채항등성을 의식적으로 무시한 채 그 순간 구름이 띠는 실제의 색- 노랑과 옅은 파랑, 회색을 보았던 것입니다. 



풀리지 않은 질문: 지금 보니 흰금이 파검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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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Slate)>에 실린 “드레스가 주는 교훈”에서, 뉴욕대학에서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가르치는 파스칼 월리슈는 특히 “흰금”과 “파검”이 바뀌는 현상을 흥미롭게 주목했습니다. 드레스 사진을 잘 보면, 위쪽의 빛은 푸르스름하게, 아래쪽의 빛은 다소 불그스름하게 보입니다. 게다가 드레스 사진의 화이트 밸런스가 절묘하게 모호한 위치에 놓였기 때문에, 빛 단서만 놓고 보면 “흰금”과 “파검”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00rubinvase.jpg» '루빈 꽃병'. 출처/ Wikimedia Commons

러나 드레스 사진의 경우, 일반적인 쌍안정 지각(bistable perception), 즉 위의 루빈 꽃병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흰 병과 검은 얼굴이 번갈아 보이는 것처럼 빠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의식적으로 조절하기도 어렵습니다. 또한 월리슈는 공간적 맥락 뿐 아니라 시간적 맥락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전에 쌓아온 시각 경험이 색채항등성이 작용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가령 올빼미 타입, 즉 단파장이 강한 인공조명 아래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온 사람의 뇌는 자동보정을 할 때 푸른색을 ‘제거’할 가능성이 더 높겠지요.


저 개인적으로 볼 때 “흰금”과 “파검”이 바뀌는 현상이 유난히 흥미로웠던 이유는, 월리슈가 말했던 것과 같은 쌍안정 지각의 예시 중 색채에 관련된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루빈 꽃병처럼 형태에 관련된 시각 자극이나, 움직이는 점처럼 움직임에 관련된 시각 자극은 쌍안정 지각 연구에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지만 이처럼 색채 지각에서, 그것도 수백만 명의 사람이 “흰검” 혹은 “파금”이라는 서로 다른 두 색채 지각을 오가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에 수행된 고전 연구부터 지난 2000년대의 시각신경과학 연구까지 간단히 훑어보았지만 이번 드레스 사진과 같은 연구 사례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흰금”에서 “파검”으로, 다시 “파검”에서 “흰금”으로 바뀌는 현상은 쌍안정 지각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네, 저 역시 매우 궁금하지만 이 질문만큼은 제가 아는 한, 현재의 연구 결과만으로는 아직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는 어두운 푸른색과 탁한 겨자색 드레스가 “흰금” 혹은 “파검”으로 보이는 이유는 색채항등성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흰금”을, 또 다른 사람은 “파검”을 보는 이유는 뇌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색채항등성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색채항등성을 일으키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햇빛에 익숙하도록 진화한 우리 뇌, 망막의 원추체와 간상체, 방의 밝기와 모니터에서 들어오는 빛의 각도, 시간이 지나며 쌓인 빛 경험 등이 모두 “흰금”과 “파검”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왜 “흰금”에서 “파검”, 혹은 “파검”에서 “흰금”으로 바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답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즐거움을 위해 남겨진 수수께끼일 것입니다. 


김서경 미국 일리노이대학 인지신경과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출처: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79&page=2&document_srl=248569



* 한때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었던 드레스 색깔. 나는 파검으로 보였지만 친구는 흰금으로 보아서 얘기가 어떻게 그 색으로 보이냐며 얘기가 길어졌던게 기억난다. 사람마다 색채항등성이 다르게 작용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결론 낼 수 없이 여러가지라는 것이 아쉽다. 그만큼 색채항등성이 작용하는데 변수가 많이 있다는 것 같음.


* 단어정리

색채항등성: 어떤 사물을 볼 때 시각 시스템은 익숙한 햇빛의 변화에 근거해 눈에 ‘보이는’ 색을 보정하게되는데,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자연 보정’ 현상을 일컬음.


팝콘 연구: 수증기 분출로 ‘퍽’ 소리…전분 ‘다리’로 공중제비

오철우 2015. 02. 16
추천수 0

[이색연구]

프랑스 연구진, 팝콘의 튀어오름과 음향 연구

“열역학, 파괴역학 등 이용, 바이오역학 풀이”


[ 동영상 https://vimeo.com/117126920 ]


'퍽, 퍼벅, 퍽…'

옥수수 알맹이를 기름 두른 뜨거운 판에 올려 달구면 단단한 알맹이는 튀어오르며 부풀어서 먹기 좋은 팝콘이 된다. 퍽퍽퍽 또는 톡톡톡, 경쾌한 소리와 함께 훌륭한 주전부리 팝콘이 완성된다. 퍽 또는 톡 터지는 팝콘 소리는 어디에서 비롯한 걸까? 튀어오를 대 바닥을 치며 나는 소리일까, 딱딱한 껍질이 파열할 때 나는 소리일까, 아니면…?


이런 사소한 궁금증에 이끌린 프랑스 연구자들이 과학적 실험과 관찰, 해석을 거친 뒤에 번듯한 논문 한 편을 내놓았다. 이 연구를 뭐에 쓸까 하는 물음에 앞서서 소소한 물음을 진지하게 던지며 과학적 방법을 거쳐 확인하려 한 연구자의 태도는 눈길을 끌 법하다. 프랑스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연구자 에마누엘 비로(Emmanuel Virot) 등 연구진은 팝콘에 관한 연구결과를 <왕립학회 인터페이스 저널(Journal of Royal Society Interface)>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팝콘: 임계온도, 점프, 소리”라는 제목처럼 논문은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팝콘이 터질 때의 임계온도를 측정하고, 팝콘이 튀어오를 때의 거동을 살피며, 마지막으로 팝콘 터지는 소리가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를 관찰하고 해석한 것이다.

00popcorn.jpg» 터지는 팝콘의 모습. 출처/ Wikimedia Commons

00popcorn2.jpg» 팝콘의 다양한 모양들. 출처/ http://emmanuel-virot.weebly.com/popcorn.html 

연구자들은 먼저 50차례 실험을 거쳐서 옥수수 알맹이의 크기나 모양과 상관없이 팝콘이 생성되는 임계온도가 "섭씨 180도"라는 결론을 얻었다. 섭씨 170도에서 팝콘의 34퍼센트만이 튀어올랐으며 180도에선 96%가 튀어오르는 것으로 측정됐다. 이런 임계온도는 이전에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비슷하게 측정된 바 있다고 한다.


좀 더 독창적인 관찰은 팝콘의 거동이다. 연구자들은 “브레이크 댄스: 팝콘 점프하다”라는 제목의 논문 소절에서 그 관찰 결과를 다뤘다. 연구자들은 옥수수 알맹이 한 알이 뜨거운 판 위에서 튀어올라 490도로 한바퀴 반이나 회전하는 공중제비 장면을 관찰했는데, 이때에 공중으로 튀어오르는 힘은 알맹이의 전분 껍질이 터지면서 생기는 일종의 ‘다리(leg)’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팝콘은 이런 전분 다리의 도움닫기로 튀어오르는 것이다. 연구진은 팝콘의 튀어오름은 가스 분사로 날아오르는 ‘로켓 효과’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석했다.

00popcorn3.jpg» 달궈진 판 위에서 튀어오르는 팝콘의 모습(초기단계). 출처/ Journal of Royal Society Interface 

연구진은 팝콘의 튀어오름을 꼬투리 터트리는 식물(explosive plants)과 비교하고, 근육을 이용해 공중제비 하는 체조선수와도 비교했다. 관찰 결과에 더해 일과 운동, 에너지 계산식을 동원해 분석한 연구진은 “팝콘의 튀어오름은 운동 시스템의 두 범주, 즉 파괴역학(fracture mechanism)을 이용해 꼬투리를 터트리는 식물과 근육을 이용해 뛰어오르는 동물의 중간 쯤에 놓여 있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 꼬투리를 터트리는 식물  http://youtu.be/Jq8SeweobCg ]

[ 터지는 팝콘 https://vimeo.com/117126916 ]


지막으로, 팝콘 터지는 소리는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연구자들은 팝콘 소리의 원인을 세 가지 시나리오를 세워 추정했다. 먼저 △옥수수 알맹이가 파열할 때 나는 소리이거나 △튀어오를 때 바닥을 치며 내는 소리일 수 있거나, △압축된 수중기가 분사할 때 나는 소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세 가지 시나리오 중 앞엣것 둘은 관찰 과정에서 기각됐다. 연구진은 세밀하게 관찰한 결과에서 팝콘 터지는 소리는 팝콘이 튀어오르기 이전에 났으며, 알맹이가 파열되는 순간에도 아무런 소리가 생성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고속촬영 영상과 음향 기록을 동기화 하여 분석한 결과에서, 옥수수 알맹이 안에 있던 물기가 압축됐다가 수증기로 분사되면서 팝콘 터지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관찰됐다고 전했다.


“그러므로 '퍽(pop)' 소리는 수중기 방출에 의해 일어난다는 가설이 타당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팝콘 안에서 생긴 압력 강하가 빈 공간에 음향가진 효과(exite)를 내어 소리가 나는 것이며 이는 음향공명(acoustic resonator) 현상과 마찬가지다. 이런 시나리오는 화산 음향에, 그리고 샴페인 병마개의 ‘퐁’ 소리에 적용되어 왔던 그런 것이다. 그림(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갑작스런 (음향) 분출은 압축된 수증기의 연속적 방출이 연속적 음향가진 효과(excitation)를 일으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00popcorn4.jpg» 출처 / http://rsif.royalsocietypublishing.org/content/12/104/20141247 

'팝콘의 과학'을 연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제1저자인 에마누엘 비로(Emmanuel Virot)가 자신의 인터넷 누리집에서 남긴 짧은 글은 이런 연구 동기를 보여준다.


“(팝콘 연구) 프로젝트의 목표: 간단하고 동기유발적인 실험들(교실에서 재현할 수 있다)을 활용해, 우리는 몇 가지 학문적 연구분야들(열역학, 파괴역학, 유체역학...)을 한데 모아서 팝콘의 ‘바이오-역학(bio-mechanics)’을 논하고자 한다.” 



출처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79&page=3&document_srl=241607



전자레인지 팝콘을 돌려먹을때 나는 팝ㅍ팝터지는 소리가 나는 원인을 이색적으로 밝혀낸게 재밌음. 


*단어정리

파괴역학: 물체의 물성을 분석하고 물체의 각종 강도와 기타 물리적 및 역학적 물성을 측정하고 연구하여 파괴 후의 거동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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